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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景福 卒業 60年을 살어온 나의 人生살이
    景福 卒業 60年동안 나의 삶 2017. 9. 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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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景福 卒業 60年을 살어온 나의 人生살이

     

     

     

    자와 살어온 60년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 흘러 80세가 됬다.

    거이 종착역 가까이 닥아왔다.

    나는 학창시절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고 운동과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무었이든 만드는것을 좋아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뭉처서 놀러 다니기를 좋아해서 1차 대학은 못가고

    2차 한양공대 전기과에 입학 했다.

    그래도 福자는 나의 빛과 소금이며, 나의 자부심 이였다.

    대학 1학년 1학기때 아버님께서 아침 출근하시어 점심드시다가

    뇌출혈로 45세에 운명을 달리 하셨다.

    같은동내에 살던 친구에게 달려가 엄청나게 울었던 기역이 난다

    장래는 福자 친구 40여명의 도움으로 무난히 치루고.

    아버님의 직장 공보부 영화과에 근무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일을 잊지못하고 福자 친구는 내인생의 일부분으로 60년을 함께했다

    공보부 영화과 녹음실 근무는 사회에 첫 출발로

    솔선수범을 하며 열심히 근무를 했다.(1958년 )

    1년 군에서 의가사 제대를 하고 1961년도 첫작품 "로맨스그래이" 신상옥 감독 ,

     "고려장" 김기영 감독 작품으로 영화녹음 기사로 작품에 이름이 오른다.

    아침에 공보부 9시출근 6시퇴근하여 개인녹음실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4시에 청진동 해장을하고 다동 턱키당에서 8시께가지 눈을 붙이고

    공보부 출근을 했다.(그당시 턱키탕은 1960년도 처음 도입됬다)

    그당시 어느날  친구 2명이 출근시간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친구들 몇명이 술을먹고 종삼으로 갔으나 돈 낸다는 친구가

    도망해서 이노꼬리 잡혔다고 돈을 부탁한다

    나는 두말 않하고 한달치 월급을 가불해서 주었다'

    그시절이 그립다.나를 찾어온다는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

    잊지못할 추억이다

     

    반샘일을 하며 7년만에 1964년도 한양공대를 졸업하고

    1964년 5월2일 아스토리아 호탤에서 결혼을 하였다

     

     

                                            문화공보부 오재경 장관 주례       

     

    결혼하여 이중 직업을 할수없어 공보부 영화제작소를 퇴직하고,

    말리동 국일 녹음실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영화녹음을 시작하였다.

    1966년도 대종상 6회 녹음상을 처음 타고. 그후 대종상 녹음상 총 8번을 탔다

    그때 광하문 시민회관 앞에 장시진을 치며 싸인해달라는 여대생이 많었다;

    영화계에서 인기도 좋아  쉴세없이 밤을새며 일을 하여 돈을 좀 벌었다.

    福자 친구들에게 나는 시간이 없어 함께 술을못하고 녹음실 직원를 보내

    수시로 술갑을 지불한때도 있다. (명동 카내기홀. 동아 지하빠등)

    한국 처음으로 "키네코다 "기기를 제작하여, TV 가요 프로를 16mm 영화로

    복사 제작하여  월남으로 보내고 공보관을 통해 지방에서 상영하여

    큰 돈을 벌게 되였다.

    극영화 제작, 감독을 하려고 씨니리오을  직접써서

    "지구여 넘추어라 내리고싶다" 나훈아, 안인숙. 주연

    강능 경포대로 나훈아,안인숙 등 스텝 50여명과 청량리에서 12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1차 촬영을 하고 돌아왔으나 신청해 놓고간 쿼타가 나오지 않아 300만원을 날렸다

    (1967년 그때는 한국영화가 쿼타제로 영화제작을 했다,)

    그래도 실망하지않고 다시녹음을 한다

     

    1968년도 "몽녀" 임권택 감독.

     

     

    한국최초 입체음향 4본 튜럭, 입체음향 녹음기 제작 이재웅. 녹음 이재웅.

    입채영화 3D 촬영기 제작 장석준,촬영 장석준 

    아세아 극장상영. 흥행성공.  영화계에 많은 찬사를받었다

    1971년도 "충향전" 이성구 감독

     

    한국 최초 70mm 6본튜럭 입체음향 작품

    1971년도 70mm 춘향전 6본튜럭 입체음향  녹음기 제작,녹음 이재웅,

    70mm 카메라제작 장석준.  촬영 장석준 (스카라 극장 상영)

     

     

     

    1974년도 "지구여ㅡㅡ" 이재웅감독

                                

     

     

     

     

    1974도 "지구여 넘추어라 내리고싶다" 4년만에 다시 제작 감독하여

    1974년도 당성사 상영. 흥행실패. 입체음향 4본튜럭 세미음악 영화로

    그시대를 비평하는 반항적인 요소가 있다하여 남산에 불려가 몇대 맞고

    좋은영화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났다. (그당시 밖에나가 말하면 않되었다)

     (그때시대 보다 10년은 빠른 영화라고 평을 하였다 )

    흥해에 실패는 하였어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신나고 즐거운 작업이요 ,

    행복한 시간이다.

    어떤일이든 꿈을 실현하기위해 어렵고 고단하고 힘들어도 그꿈을 이루어 가는 시간은

    행복한 삶이요. 아름다운 영원한 추억이다.

     1976년 대작 해군영화  "바다의 사자들" 제작,감독,단성사 개봉.흥행실페 

    잠실 13평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다시 생계를 위해 녹음을 했다.

     

     1976년도 "바다의 사자들"이재웅 감독

     

     

     

    두번 실패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난일 생각을 뒤로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즐겁게 일을 하였다.

    하고싶은 일은 하다보면 그럴수있다며.

    집사람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에게 힘을 주었다

    집사람에게 고마움 마음을 늘 간직하고있다 

    1978년 영화진흔공사 옛 KBS 자리로  이전하면서 

    녹음시설 현상시설을 하기위에 나에게 러브콜이 왔다

    영화 감독 제작을 포기하고 영화진흥공사 기술과장으로

    입사를 하여  녹음과 현상시설을 하고 ,기술부장으로서

     영화 녹음,현상,편집,작업 책임자로 한국영화 90% 작업을 했다

    1961년도 녹음 작업을 시작하여 700 여작품을 헸다

    그때까지는 후시녹음으로 성우가 립 씽크로 녹음을 하였다,

     

                                                                              

    1981년도 부터 한국 영화는 촬영 현지에서 배우들의 음성으로

    영화가 제작 되기시작 하였다

    1981,1982, 1983,년도 최초로 동시녹음을 시작하여 3년을

    계속 대종상 녹음상을 탄다

     앵무새는 밤에운다,아뱅고 공수군다 ,물래야 물래야.

     

     

     

     

     

    1994년 제 32회 대종상 8번쨰 마스막 녹음상


     

    1973년 제 14회,  1976제 15회 대종상 녹음상

     

     

    2000년10월15일  화제로 전소되고 남은 트로피와 사진 몇장

     

     

    낮과밤 파리촬영  원미경    .......   물래야 물레여 원미경

     

    15회 대종상 ,고은아. ..............낮과밤  문정숙

     

     

    시드니, 윤일봉......................강화도 김지미 윤일봉

              

     

              1978년도 작품  '을화' 초대시사화 .. 월로 영화인 강화도 초대 식사

     

     

    낮과밤,  파리 베르샤유 궁전

             

     

    캐냐, 키리만제로 근처

     

     

            

                                          케냐 마사이쪽

            

     

                       호주 시드니                               호주 퍼스

     

     

     

    프랑스 리옹                                 마래시아 패낭

     

    바다의사자들. 황해

     

     

    물래야 물레야 동시녹음 (1983년 제 22회 대종상 녹음상)

     

      

     

     

     

        

    이재웅 제작 ,감독 "바다의 사자들 " "지구여 넘추아라 내리고 싶다"

     

    "낮과밤"영화 동시 녹음으로 90일간 세계일주로 많은 나라를 일하며 여행을 했다,

    1982년도는 한국사람 세계여행은 별로없을 때다.

    90일간 해외 여러나라를 다닌 재미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1994년도 "만무방"  동사녹음 작품 32회 대종상 녹음상 총 8회를 탄다

    영화계에서 제일 많이 대종상을 탄것으로 기록에 남었다.

    그후 남양주 종합촬영소 시설을 하여 촬영소 소장을 3년을 근무한다

    1996년 남양주촬영소 소장으로 정년 퇴직을 하여 영화 일을 논다

     

     

     

     

     

     

     

    양수리 전원 주택을 직접 설계하여 집을 지어 전원 생활 5년을 한다

    2000년 10월15일 태양열 보일러 누전으로 불이나 전소한다.

    나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아마도 새로운 도전에 결실인것이다

    그당시 태양열 온수보일러가 초창기로 시작될 무렵이라 의정부에 보일러 상회에서

    미비한  시설로 화재를 불러왔다.

    그때일을 생각하면  꿈같은 시간이 였다

    어머니와 집사람은 불난 자리에서 패물이라도 건질까 하고 뒤적이는 모습.

    福자 친구들의 배려는 눈 감을때까지 마음속 깊이 간직한다.

    영화진흥공사있을때 사용한 신용카드 10장으로 남한강 돌집을 짓는다

    두달 걸려 완성하여 집을 팔고 (대지 250평.건평 60평)

     

     

    그옆 45평 집을 건축하여 3년동안 팬션을 운영을 하였다

    그당시 팬션이 한국처음으로 시작하는 초창기였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 일이라 다 정리하고 일산으로 온다

     

     

     

     

     

    40년을 밤일로  영화를 만들고 11년을 기쁨과 슬픔으로  전원생활을 끝내고

    일산에 온지도 10년, 어느덧 졸업 60년,80세 인생 종착역이 그리 멀지않게 닥아 왔다

    지금 까지 살어온 세월을 생각하면 내 인생은 즐겁고 재미나는 인생이였다.

    한국 영화 녹음분야에서 일인자라고 자부하며 살어온것은 福자의 힘인것 같다.

    나는 내 분수에 맞는 꿈을 꾼다 ,그러기에 늘 꿈이 이루원진다는 喜望을 품고 살고있다

    내 인생에 아쉬움있다면,66년을 함께 살어온  福자 친구에게 별로 배풀지 못하고

    있다는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생 종착역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보고싶고 보고 싶다

     

    이필호 .최한호 작고하고,서명균 미국,이영상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현재 5명중 나만이 지금 한국에서 살고있다

     
    멋스러운 福 자 친구, 나의 빛이요 소금이다,

    졸업 60년을 함께 살고있는 우리는 남은 인생을 무탈하고

    건강하게 즐기며 종착역에 함께 도착 하기를 기원한다,,

     

     

    영화계에 윤태영( 윤삼육) 감독 .석내명 감독 ,이재웅 감독.

    3명이 景福 32회 동기였다

    한편 생각해보면 영화일은 화루계 생활이였다고 볼수있다

    53세 되든해에 나는 어느여인에게 미처서,집사람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한적이 있다

    그연인에 나이는 39세 미모의 싱글이 였다 

    김용문,노재기, 강윤식, 강신호,성내명,등과 이촌동 목향카페에서

    자주 만나 술한잔 할때다,

    그러던 어느날 10시경 홀로 맥주한잔 하는 여인에게 닥아가 인연을 맺어 사랑이

    싹트기 시작 하였다.

    그로 인해서 집사람에게  씻을수 없는 앞은 상처를 주었다.

    지금에 와서 후해는 않해도 집사람에게 항상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5년전 집사람이 치매 5급으로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열심히 죄갑을 치루고있다.

    졸업 60년동안, 나 나름데로 멋스러운 인생살이 였다고 생각한다

    60년 세월을 내분야에서 福자의 견장을 달고 부끄럼 없이.후해없이

    살어온 삶은 그 안에 "景福" 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나는 멋스럽게  살어온 것이다.

    남은 인생도 멋스럽게  종착역에 도착할 것이다.

     

    福자 친구들이여!! 사는날까지 건강하고 즐겁고 신나게 살다 가자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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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부터 쌍용 카리스타 오픈카를 타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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